처음 본 중년 여성과 데이트한 사연
글 : 이근후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2023-02-20
한창 정신과 의사로 일하던 중의 한 일요일이었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이른 아침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 늦게 전화벨이 울리면 좀 불안하다. 직업 때문일까 나는 정신과 환자를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이런 전화는 병실에 응급 상황이 생겼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불안하다. 정신과 병실에서 응급 상황이란 환자가 폭행을 하거나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해 진다거나 아니면 자살을 시도하는 등 그런 종류의 응급 상황이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수화기를 들었다.
“누구세요” 병동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라 앉히면서 물어 보었다.
“나 옥길이야”
“옥길이?”
어디서 들어 본듯한 이름이긴 한데 누군인지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이 이른 아침에 전화를 건다는 것도 또한 불안한 일이다.
“옥길이가 누고(누구냐 라는 경상도 사투리)”
“총장”
이크 김옥길 총장님 이시구나, 나는 전화를 받으면서 좀 긴장했다. 긴장했다는 말은 내가 총장님에게 좀 켕기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1973년 3월에 내가 재직하고 있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에서 이화대학에 조교수로 직장을 옮겼다. 발령을 받고 총장실에 인사차 들렸는데 계시지 않아서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부 총장님께만 인사를 드리고 온터라 그게 마음에 켕긴 것이다. 병원에 근무하다 보니 총장님께 인사를 간다는 것이 하루 이틀 미루다가 얼굴도 뵙지 못하고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이 교수 오늘 나 좀 만나 보라우”
앞뒤 설명도 없이 그냥 만나 보자는 이야기셨다. 왜 만나자고 하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예배가 끝나면 만나 보자는 말씀만 하시고 전화를 끊었다. 급하게 옷을 챙겨입고 중강당으로 갔다. 당시 교직원들은 일요예배를 중강당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곳으로 찾아갔더니 아직 예배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뒷자리의 빈자리에 앉아 예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예배가 끝나자 복도로 걸어오시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 앞에 오시더니 뜬금없이 중년 부인 한분을 나한테 소개했다.
“이 교수, 오늘 총장 차를 내어 줄테니 이 분하고 데이트 좀 해보라우”
그러시고는 총장 공관으로 가 버리셨다. 총장님은 내가 총각이라고 아시나 보다. 라는 뚱딴지 같은 연상을 하면서 그분을 모시고 총장 차를 타고 데이트에 나셨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생각하다 메디컬 센터의 스칸디나비안 클럽으로 갔다. 당시에 뷔페를 하는 곳은 이곳이 유일했다. 함께 가서 맛있는 뷔페를 먹고 곁에 있는 조용한 차 마시는 공간으로 가서 데이트를 즐겼다. 그분은 기분이 좋은 듯 말씀도 잘하시고 유쾌한 표정이었다.

나는 오늘의 데이트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해서 그분에게 물어보았다. 그분의 대답은 자신은 외국에 살고 있는데 오랜만에 귀국해서 총장님에게 인사를 갔더니 중강당에서 만나자고 해서 왔다가 총장님 말씀대로 나와 데이트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피차 경우가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차근차근 환담을 즐겼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 이래서 총장님이 데이트를 해 보라고 하셨구나 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화의 시간이 길어 지면서 그 부인이 하신 말씀은 조리에 맞지 않는다. 약간의 과대망상도 있었고 사고의 비약도 심했다. 일견해서 조증 상태에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진단 메뉴얼 대로 차근히 문진을 해 보았더니 조증이 확실하다. 나는 데이트 마치고 총장님을 찾아가서 그 부인의 상태를 말씀드리고 3개월 정도 입원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총장님은 그 부인을 향하여 이 교수가 잘 돌보아 드릴거니까 3개월 정도 푹 쉬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한번 더 당부를 했다. 이분은 우리 졸업생인데 잘 돌보아 드리라고 하셨다. 나는 이화대학으로 온지 얼마 되지도 않고 김옥길 총장님에 대해서 아는 바도 적었다.
평안도 시골에서 출생하여 이화여전을 졸업하시고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총장의 중임을 맡으신 정도의 정보 밖에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나의 직업적인 경험 탓일까 김옥길 총장님은 배려심이 참 큰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날 만남이 첫 만남인데 내가 왜 이런 추측성 인상을 받았느냐 하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우리 졸업생에 대한 배려다. 처음 찾아왔을 졸업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셨을 텐데도 그런 방법으로 데이트를 해 보라고 했으니 그것이 배려했다는 증거다. 흔히 우리들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으면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 줄 테니 치료를 잘 받아 보라고 했을 텐데 그런 말씀은 하지 않고 데이트를 해 보라고 하셨으니 그것이 큰 배려다. 왜냐하면 정신과에서 치료받아 보라고 권한다면 대개는 자기 자신을 정신병 환자로 취급한다고 저항하면서 아니라고 많이들 거절한다. 그런데 이런 직설법을 피하여 데이트를 권했으니 심려 깊은 배려라 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두 번째로는 치료자인 나에게 대한 배려다. 총장님이 자신이 보기에 환자 같으니 나 보고 잘 보라고 했다면 총장님 말씀에 선입견을 갔고 그 부인을 보았을 것이다. 그냥 데이트를 하라고 하신 말씀은 나에게 그런 선입견을 주지 않으려고 하셨던 배려일 것 같다. 만일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나는 총장님의 말씀에 선입견을 가지고 그 테두리 안에서 환자를 보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다른 상황을 놓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배려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생각은 단지 나의 경험적인 상상일뿐 김옥길 총장님에게는 물어 보았다거나 확인한 바가 없기 때문에 정말 내가 추측하듯 그런 배려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하여 내가 받은 첫인상은 총장님은 배려심이 많은 분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일로 인하여 김옥길 총장님에 대한 첫인상은 호감이였다. 사람들에게 첫인상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 중요한 일이다. 이 중요한 첫인상을 나는 김옥길 총장님의 배려심에 깊은 호감을 가졌던 것이 총장님이 타계하실 때까지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핵심적인 인상이 되었다.
이근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퇴임 후 아내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하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요 저서로는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