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VS 육아, 나의 선택은 옳았을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커리어 VS 육아, 나의 선택은 옳았을까

글 : 김동선 / 조인케어 대표/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대우교수 2022-12-09

지방사립대학에 근무하다 보니, 입시 철만 되면 수업 이외의 업무량이 늘어난다. 고등학생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합격생들에게 꼭 우리 학교에 등록해 줄 것을 당부하는 등 학교 홍보도 해야 한다.


올해 수능 수험생이 50만 명인데, 전국 4년제 대학과 전문대를 전부 합치면 정원이 70만 명을 넘는다. 정시이외에 수시로 입학하는 학생도 적지 않으며 재수생들도 많지만, 이제는 입학생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더니 예상하던 일이 눈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2022년 한국의 출산율은 0.8을 깨고 0.78명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세계 최저수준이다. 지난 20년간 정부가 250조 원을 쏟아 부었지만 출산율 하락은 멈출 줄을 모른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은 이제 젊은 세대들의 인생 계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저출산이 여성의 책임이냐며 발끈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이 여성의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와 희생이 남자와는 비교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궁극적으로 여성의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


많은 여성들이 출산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이 되면 다시 커리어를 이어서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엄마의 역할은 출산, 육아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벌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아이들 성적은 엄마의 정보력에 달렸다 하니 엄마들의 사회복귀는 점점 어려워진다.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면 이미 40대 후반, 50대 초반이다. 코앞에 다가온 노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 된다. 그래서, 악착같이 자신의 커리어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커리어와 병행하기 어려운 출산과 육아를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집에서도 50점짜리, 밖에서도 50점 짜리


나 역시 결혼규범이 없었다면, 선택이 주어졌다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항복선언을 하기 전까지(사표를 쓰기 전까지)는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자연히 집에서도 50점짜리, 밖에서도 50점 짜리였다.


그래도 아이 하나였으면 끝까지 버텼을지 모른다. 둘째가 생기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30대 중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내 경력을 쌓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리던 시기였다.


모성 본능보다 일이 주는 성취감,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더 강했다. 게다가 그 나이의 나는 왜 그리 하고 싶은 일이 많았을까?


나의 인생 첫 직장은 신문사였다. 매일 마감에 좇기고 저녁 8시가 지나 다음 날 조간신문을 확인하고서야 퇴근할 수 있었던 신문사의 근무 환경은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가 어려운 구조였다. 게다가 매일 새로운 뉴스를 다루는 박진감은 있지만 다음 날이면 잊혀지는 기사보다 더 오래 읽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뉴스는 못 되지만 중요한 이슈들을 진지하게 다루는 아카데미즘에 많이 끌리게 됐다. 둘째를 임신하고 휴직을 한 참에 대학원 입학 준비를 했다. 간난 아이를 낳고 침침한 눈으로 책을 본다고 부모님에게 지청구를 받기도 했다. 연구계획서를 쓰기 위해 국립도서관에서 자료를 조사하고 있으면 젖이 불어서 블라우스를 적시기도 했다.


내 성격이 한번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편인데, 막상 출산휴가가 끝나가는 데 대학원 합격 전화를 받으니 오히려 난감한 상황이 돼 버렸다. 두 아이와 대학원, 월급 나오는 직장,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겠다는 욕심을 부린 것을 보니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일과 가정, 학업까지 병행해야 하니 둘째 아이는 한 달 만에 입주 아줌마에게 맡겨져 아줌마 방에서 잠을 자야 했다. 가슴을 칭칭 감아서 젖줄도 막아버렸으니 둘째는 엄마 젖을 겨우 한 달 먹어본 셈이다.




날개를 펼치려던 순간 접어버리다


아이가 18개월이 됐을 때, 나에게 일본에서 1년 동안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유학이 꿈이었던 나는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갓난아기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초등 2학년인 큰 아들만 데리고 유학을 가기로 했다.


시댁에서 일주일을 함께 보내면서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떠나는 날 아침에, 귀신같이 눈치를 챈 아이는 내 다리를 잡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시어머니가 아이를 들쳐 업고 나에게 어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얼굴이 벌개져서 할머니 등을 팡팡 치며 울부짓던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집을 나섰다. 참으로 모질고 독한 엄마였다.


그렇게 일본에서 1년간 공부를 하고 돌아온 덕분에 전문가 대접을 받기는 했지만 일은 점점 더 늘어나서, 새벽에 집을 나서서 밤 늦게 집을 들어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지방 연구소에 근무하는 남편은 애시당초 육아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엄마의 부재는 집 안 구석 켜켜히 쌓여갔다. 초등학생인 큰 아이는 엄마 숙제이기도 한 학교숙제에 거의 손을 대지 못했고, 학원 대신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입주 아줌마의 손에 크는 둘째는 툭하면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마음에 안 들면 물건을 집어 던지며 행패를 부렸다.


아이가 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날, 나는 사표를 쓰기로 했다. 10년이 넘게 다닌 회사였고, 이제 막 내 경력이 날개를 펼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때가 25년 전이었으니, 가족병가도 육아휴직도 없던 시절이었다.



경력단절이 가져다 준 새로운 계기


십 여년의 경력 공백은 나름대로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이었다. 가족이 모여서 밥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 과학관을 다니고, 아이들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엄마 역할이 편하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아이들 때문에 꼬박 밤을 새기도 하고, 질풍노도 사춘기를 지켜보면서 ‘내려놓기’와 ‘기다림’을 배우게 됐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나도 성숙해졌다.


수업시간에 책에다 만화만 그려대던 큰 아이는 지금 대학원에서 좋아하는 미술을 공부하고 있다.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엄마 덕분에 내가 무사히 대학에 들어올 수 있었어’라고 말해주었을 때 내가 놓쳐버린 많은 기회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둘째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게다가, 이 나이에도 다시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경우, 경력단절이 오히려 새로운 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아이를 기르면서 박사과정을 끝내고, 틈틈이 연구를 계속했던 것이 지금의 직장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지금 퇴직을 해야 할 나이에 오히려 제2의 일을 시작하여 직업 수명을 연장해가고 있다.


물론, 50대 후반에 대학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보면, 속상할 때도 없지 않다. 지금도 힘들 때면 아이들에게 ‘엄마가 너희들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말이야...’라는 말을 한다. 어느 날 그 말에 둘째 아이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나 때문에...’


20대 중반의 멋진 청년이 된 둘째 아이, 아직도 마음에 불안과 그늘이 있음을 눈치챈다. 출생후 몇 년 동안의 공백을 다 지우기는 힘들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도 나를 가장 많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둘째 아들이다.


내 안색을 늘 살피며, 힘든 일이 없는지 물어준다. 내가 아플 때 약을 챙겨주고 병원에 데려다 준다. 스마트폰의 새로운 기능도 알려주고, 용돈도 챙겨주고, 남편과 싸우고 속상해 할 때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준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들에게 자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 느낄 수 있다. 심청이를 기다리는 심봉사처럼 자식이 찾아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맛있는 것, 좋은 옷은 죄다 자식들이 가져다 준 것이다. 무엇보다 나의 역사를 알고 있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기억해준다.


여자에게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지난 시대의 유물과 같은 일이 돼 버렸다.


여자에게 반드시 아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모성은 신화일 수도 있다. 제대로 키우지 못할 거면 아예 낳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이제는 자식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불편한 일이 돼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길고, 노후도 길다. 키우기는 힘들었지만 ‘베스트프렌드’가 되어준 내 아이를 인생계획에 넣은 것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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