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 속 또 다른 내가 펼치는 대환장파티!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평행우주 속 또 다른 내가 펼치는 대환장파티!

글 : 김봉석 / 작가 2022-11-16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하지 않고 해외 유학을 갔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첫사랑에 실패하지 않고 그대로 결혼까지 갔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과거의 선택들을 끄집어내 되짚어본다. 자신의 인생에 한 점 후회가 없다 해도(아마 그런 사람은 심한 나르시시스트이겠지만), 한 두 개의 선택을 다르게 했어야 한다는 정도의 아쉬움은 있을 것이다. 자신이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수시로 내린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와 자책 때문에 정신이 어지러울 수도 있다.




영어를 그대로 한글로 읽은 지루한 제목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에블린도 지금 심란한 상황이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온 에블린은 이제 중년이 되어 남편 웨이먼드와 함께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탈세 혐의로 세무당국의 조사를 받는 중이고, 딸 조이는 여성 애인을 데려와 인사를 시키고, 난데없이 웨이먼드는 이혼을 요구한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데 함께 세무조사를 받으러 간 웨이먼드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한다. 자신은 다른 우주에서 왔고, 모든 평행세계의 혼돈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이 에블린에게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해 왔던 에블린은, 평행세계를 점핑해가며 악의 힘과 싸우기 시작한다.


멀티버스, 다중우주의 개념은 복잡하다. 우주는 무한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만이 아니라 무수한 우주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우주와 전혀 다른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우주가 존재할 수도 있다. 우리들,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우주가 유일한 것이 아니고 단지 무한 속에 존재하는 하나일 뿐이라는 개념은 무척 중요하다.


평행우주는 다중우주의 하위 개념이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는 평행우주 설정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현재의 선택에 따라서, 미래가 뒤바뀌고 과거의 사건들도 변해버린다. 1980년대의 SF 명작 <빽투더퓨처> 3부작을 떠올려보자. 타임머신을 타고 부모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마티는 부모의 연애를 막는 걸림돌이 되어버린다. 만약 마티의 부모가 연애에 실패하고 결혼에 이르지 못하면, 마티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마티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부모의 연애를 성사시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만약 과거로 가서 중요한 사건의 결과를 바꿔버린다면, 내가 알고 있는 미래는 사라진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이 평행우주다. 어떤 사건의 결과가 바뀌면, 이미 존재하는 우주와 다른 또 하나의 우주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만약 에블린이 결혼을 포기하고 중국에 남았다면, 가수가 되었을 수 있고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아예 처음부터 조건이 다른 우주였다면, 에블린은 핫도그 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대체역사도 평행우주의 세계다. 한국이 계속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는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나치 독일이 세계 대전에 승리를 거두고 미국이 독일과 일본의 식민지로 갈라진 세계가 배경인 필립 K. 딕의 <높은 성의 사나이> 등의 소설이 대체역사를 그리고 있다.


지난 10월 12일 국내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한 달 동안 25만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천만 관객 영화에 익숙하다면 얼마 안 되는 숫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예산영화는 10만 관객을 넘으면 엄청난 성공이다. 제작비 약 2천 5백만달러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미국에서 올해 3월 1일 개봉하여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약 1억 2백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약 3천만달러의 수익이다. 기대 이상의 엄청난 수익을 올린 히트작이다.


양자경은 한국인이라면 대체로 아는 배우다. 홍콩영화 <예스마담> 시리즈와 <동방삼협>으로 유명하고, 1997년 <007 네버 다이>로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린 후 <와호장룡>. <미이라 3:황제의 무덤>, <쿵푸 팬더2>,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등에 출연하며 월드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은 성룡에게 먼저 출연 제안이 갔다가 거절당한 후, 여성으로 바꾸면서 양자경을 캐스팅했다. 웨이먼드 역의 키 호이 콴은 1980년대 <구니스>와 <인디아나 존스:마궁의 사원> 등에 출연했지만 한동안 쉬다가 다시 연기를 시작하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연을 맡았다. 지금은 조금 사정이 나아졌지만,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배우가 생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에블린이 미국에서 겪는 고난은 아시아 배우로서 할리우드에서 살아남기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성공은 아시아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우면서, 요즘 마블 영화 덕분에 대중이 개념을 약간 이해하고 있는 멀티버스를 내세워 기발하고 세련된 영상들로 관객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가족 돌보기에 여념이 없는 억척스러운 아시아의 이민자 여성인 에블린은 평행세계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변주된다. 쿵후 고수인 영화배우이기도 하고, 대중을 매혹시키는 가수이기도 하고, 고급 레스토랑의 요리사이기도 하고, 피자 광고판을 돌리는 직원이기도 하고, 핫도그 손가락을 가진 레즈비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저 돌이기도 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라따뚜이>, <캐롤>, <화양연화>, <매트릭스> 등 유명한 영화의 인상적인 요소들을 끌어들여 다양한 유니버스를 새로운 영화적 공간으로 창조한다. 어디선가 본듯한 장면들, 그러면서 기발하게 끌어내는 웃음들.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 속칭 ‘다니엘스’는 미국 대중문화의 온갖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며 현란한 대사와 장면을 창조해낸다. 너무 정신없고 때로는 지나치기도 해서, 어떤 관객들은 적응하지 못해 극장을 나가기도 했다. 한국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관객 평점은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


하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은 현란한 영상 속에서 대단히 심플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결론으로 돌진한다. 에블린은 수많은 평행우주 속에서 가장 실패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다. 잠재력이 충분함에도 그것을 꽃피우지 못하고 주저앉은 존재. 그렇기에 아직 가능성이 무한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에블린. 가장 작고, 가장 어리석은 존재가 결국 악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고 함께 광활한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결말이다. ‘쓰레기든 뭐든 난 너와 여기에 있고 싶어.’라고 말하면서. 함께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정함이다. 잘못을 지적하고,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족으로서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고, 최대한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가장 하기 힘든 것들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색다른 방식으로,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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