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여성이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필요한 것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50대 여성이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필요한 것

글 : 김동선 / 조인케어 대표/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대우교수 2022-11-07

나이에 관해서 초긍정적인 나이지만, 가끔 ‘나이가 깡패’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만에 여자 대학 동창들이 모여서 50대 후반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꼽아보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1980년대 후반 대학을 나왔다. 아들딸 차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누렸지만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스스로 벌어먹는다’는 친정 부모님의 지론에 커리어우먼이 되기 보다 결혼 잘 하는 것이 목표가 됐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페미니즘 영화 ‘모나리자’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젊고 똑똑한 여교수 캐서린은 미국 명문여대의 재능넘치는 여학생들에게 상원의원 남편을 얻을 궁리 말고 스스로 상원의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믿으라고 설득하는데, 학생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한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신화는 여전히 젊은 여자들을 구속한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알게 된 깨달음은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이다. 평균수명이 겨우 70세에 불과했던 1980년대에는 결코 몰랐던 100세 시대의 배신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취직은 비교적 쉬웠던 시절이라, 우리는 비슷비슷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함께 모이는 일이 점점 줄었다.


‘행복한 가정’의 신화가 가장 먼저 깨져버린 것은 우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결혼한 H였다, 의사인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졸지에 가장이 돼 버린 H,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해서 교원대학에 입학했다. 아이들을 등에 업고 하는 공부라, 홀가분한 싱글이었다면 4년 만에 끝낼 공부가 길어졌다. 과외로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교사자격증을 따는 데 시간이 더 길어졌다. 낼 모레면 환갑인데 언제까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야지’. 흰 머리가 서리처럼 내려 앉았지만 옛날처럼 눈꼬리를 올리며 웃는다.


의류업체의 디자이너로 일하던 또 다른 친구는 남편이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해외 생활을 이어갔다. 인도네시아, 남미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아이들 교육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잠시 국내 업체의 바이어로 일하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이어갈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들이 독립해서 집을 떠난 뒤, 주민센터에서 임시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엑셀이니, 문서작성이니 일에는 똑 소리나는 프로인데, 9급 공무원인 젊은 직원들이 말도 안 되는 타박을 할 때면 ‘젊은 게 벼슬’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단다.




남편이 국립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A, 나름 우아한 사모님으로 살다가, 남편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집 탈출을 위해 일을 찾아나섰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아무 데서도 뽑아주지 않는다. 결국 대형마트에서 선반 물건을 정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고 일하니, 아는 사람을 만나서 곤란해 질 일도 없겠다 싶었다. 어느 날 점장이 “아줌마, 일을 이따위로 하면 어떡해요? 이럴 거면 집에 있지 왜 나왔어?” 반말 섞인 핀잔을 주자 눈물이 핑 돌아버린 그녀. 그 길로 사표쓰고 집에 드러누웠단다.


최저시급으로 일하는 것은 싫다며, 우아하게 자원봉사만 하겠다는 P, 노인대학에서 중학교 검정고시를 지도하는 그녀는 ‘우리 선상님’이라며 찐 옥수수를 선물하는 어르신들에게서 보람을 찾는다. 그런데 이 마저 그만 두었다고. 노인대학 운영비를 기부해 달라는 요청 때문이다. 봉사하는데 돈까지 내라니, ‘사람을 뭘로 보느냐’이다.


나는 뒤 늦게 공부를 시작해, 고용에서의 연령차별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국내 300여 개 중소기업들을 조사하면서 나이 든 근로자들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근무평가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재취업에서 무수히 거절당하는 차별을 조사했다. 하지만 내 연구에서 여자들은 빠져 있었다. 중장년이 될 때까지, 차별의 대상이 될 때까지 회사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은 남자이기 때문이다.


50대 중반 이후, 남자와 여자들은 똑같은 처지가 됐다.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선 것이다. 100세 시대에 일은 돈, 보람, 시간을 보내는 방식, 세상에 연결되는 통로이기 때문에 다들 일을 찾는 것에 진심이다. 하지만 나이든 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나이를 딛고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최근에 공공일자리를 잡은 5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잡인터뷰를 했던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6개월 임시직이지만 한 달에 200만 원 가까이 받을 수 있는 일자리여서 지원자들이 많았다. 그녀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첫 번째 팁은 아이들 다 키우고, 시간이 남아서 ‘일’이나 해볼까 하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 동안 자신이 해 왔던 아르바이트, 자원봉사, 자격증 등 자신의 경력을 프로페셔널하게 소개하고, 이 일을 꼭 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보여주었다. 회사에서 원하는 것은 짧든 길든 일하는 동안 ‘일에 대한 헌신’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혼 전 외국에서 석사학위를 땄고, 유명 기업에서 팀장까지 했었다. 두 번째 팁은 ‘나는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잘난 사람이야’라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인사관리에서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over-qualified)은 회사에 불만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 된다.


50대 후반, 일을 계속하는 여자들은 ‘최저시급’에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자고 한다. 스스로 벌어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노후의 자립이다. 60대, 70대에도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하는 일을 징검다리로 커리어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전 몇 시간 동안 어린이집 청소를 하는 L여사, 출퇴근을 할 때 몽클레어점퍼를 입고 간다. 청소용역업체의 반장, 어린이집 교사에게 그녀는 청소부가 아니라 당당한 직업인이다. 공공기관에서 배식서비스를 하는 K여사, 그녀는 직원들의 이름과 식성을 기억하여, ‘오늘은 좋아하는 된장국이에요. 많이 드세요’라고 인사말을 건넨다. 동네 빵집에서 일을 하는 P여사는 손님이 없을 때에는 매장을 쓸고 닦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모두 단골로 만들 정도로 친절해서 사람들이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사장님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저마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열심이다. 그리고, 이 일이 다음 일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도록 커리어를 설계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한다. 현실에서는 나이가 철벽처럼 여겨지지만 마음속으로 ‘열려라 참깨’를 무수히 외치다 보면 어느새 그 문이 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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