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일자리 잡아주고 삶의 질 높여준다
글 : 김수민 2022-09-23
독일어로 혁신 또는 주도권이라는 뜻을 지닌 말로 ‘이니티아티베(Initiative)’가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자발적인 시민운동을 가리킬 때도 자주 사용된다. 공동의 뜻과 목표를 가진 시민들이 함께 모여 만든 단체나 협회도 ‘이니티아티베’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주도하에 현재의 낡은 제도를 개혁하려는 정신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이니티아티베 50플러스(Bundesverband Initiative 50 Plus)는 독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시민단체 중 하나다. 이 단체는 50세 이상 중장년층의 구직활동을 지원하고, 이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니티아티베 50플러스는 독일 정부뿐만 아니라 독일 내 다른 여러 단체와 기업의 관심도 한 몸에 받고 있다. 건설, 의학, 환경, 미디어 등 여러 산업 분야가 이 단체를 후원하고 있으며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중이다.
최근 독일 정부는 이 단체와 함께 ‘2022 독일 인구 통계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회·인구·환경 문제 전문가들은 급격하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독일의 현 상황에 대해 협의했다. 이니티아티베 50플러스는 현재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지부를 두고 있는데, 이곳에서 독일과 유럽 내의 인구 변화와 그에 따른 문제들을 연구하고 조사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한다.
독일 각 지역의 인구 변화와 노년의 삶을 다루는 뉴스 방송 ‘DNEWS24’
노인 계층을 위해 복지 문제를 연구하고, 고령 인구의 직업과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일은 매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발전하고 있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생활 환경 개선 사업, 도심 낙후 지역의 노인 가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 기본권 보장과 복지 향상, 노인들의 모바일 및 인터넷 보급과 교육 등이 이들의 주요 활동에 포함 돼 있다.
이니티아티베 50플러스는 독일 인구 변화 추이를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연구하는데, 독일 각 지역의 인구 현황과 노인 복지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축적해 놓고있다. 그리고 지역별 노인 인구 현황과 노년의 삶에 대한 영상 뉴스 ‘DNEWS24’를 제작해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DNEWS24는 노인 복지와 관련해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 중요한 이슈들을 빠르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 바이에른 지역의 인구 변화와 관련된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지역의 급격한 노인 인구 증가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다.
바이에른은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면 농업에 의존하는 소규모 지역이 많다. 그리고 주요 관광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인구의 감소 추세 속에서도 노인 인구 비율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따라서 노인들을 위한 새로운 직업 활동이 필요하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니티아티베 50플러스는 노인들의 직업 활동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촉구하고 있다. 노인들을 은퇴한 뒤 더는 일터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 구성원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젊은이들과는 또 다른 노동 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노령층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직업 형태를 노인들이 참여할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래로 갈수록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인구는 줄어든다. 이때 노인 인구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 전반의 산업과 업종, 서비스 등에서 노령층 인구를 고려한 시스템과 제도가 마련된다면 은퇴 이후 노인 인구의 직업 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중장년층 직업 활동 돕는 ‘아르바이트 이니티아티베 50플러스’
이니티아티베 50플러스는 미래 독일 사회의 경제 활동에 노인 인구의 참여율이 절대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2030년에 이르면 독일은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인구가 현재보다 20% 낮아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산업 분야의 규모가 축소될 뿐만 아니라 개인사업자나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지난 10여 년간 독일에서 55세 이상의 실업자 수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 그리고 2005~2009년에 55세부터 65세 사이의 직업 활동 인구는 100만 명 넘게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이런 증가 추세라면 2025년 고령 경제 활동 인구가 1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니티아티베 50플러스는 노년층의 직업 활동과 사회 참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50세 이상 중장년층의 직업 활동을 돕기 위해 ‘아르바이트 이니티아티베 50플러스’라는 부서를 두고 있다. 이곳에서는 은퇴한 시니어와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이들을 풍부한 경험과 인내력을 지닌 재원으로 홍보한다. 그리고 노인일자리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어 언제든지 구직 활동에 대한 조언과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채용 사이트 형식의 홈페이지 (https://jobnetzwerk.de/bvi50plus)도 운영하고 있다.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는 시니어 구직자들은 이곳에 자신의 이력서를 등록시켜 놓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기업인과 전문가들은 자신들 사업을 홍보할 수 있고, 구직자들의 이력서를 살펴볼 수 있다. 홈페이지가 시니어 구직자와 이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노년 구매자의 니즈 맞춰 추천하는 ‘소비자 추천 50플러스’
이니티아티베 50플러스의 특별한 활동으로 ‘소비자 추천 50플러스’가 있다. 상품시장의 수요와 서비스는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향후 독일의 상품과 서비스 시장은 노인 인구 급증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을 것 이다. ‘소비자 추천 50플러스’는 시중에 출시된 노인들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평가하고, 노년층 구매자들의 니즈에 맞는 상품을 선별해 그들에게 추천해 준다.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작고 섬세한 니즈까지 반영해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고령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중에 출시된 제품 중에는 포장이나 디자인은 화려하고 예쁜데, 정작 몸이 쇠약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사용하기에는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소비자 추천 50플러스’는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고령 소비자들의 욕구와 편의 사이에 균형을 찾는 일을 하고 있다. 먼저 50세 이상 중장년층에 적합한 상품과 서비스를 선별해 추천한다. 이 같은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노인들 니즈에 특화된 상품을 개발하고 제공하는 업체들을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한다. 이렇게 노인들의 필요와 요구에 부합하는 제품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자료를 공유해 생산자와 노인들을 연결하고 있다.
고령 소비자들에게 추천되는 상품은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것들이다. 먼저 전문가 집단이 모여 상품에 대한 평가 기준을 만든다. 그리고 1년에 한 차례 테스트를 통해 해당 기준을 통과한 제품들에 한해 점수를 부여한다. 매년 이 같은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질 좋은 상품을 계속 판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고령화로 인해 노인 인구의 경제 활동 참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소비 연령대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산업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니티아티베 50플러스는 현재 노인 인 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 더불어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와 생활 안정, 사회 활동 등 미래의 노인들 삶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김수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