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구직에 임하는 마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고령 구직에 임하는 마음

글 : 박한선 /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2020-11-11

고령에 구직에 임한다는 건 자기 자신을 다시 시장에 내놔야 하는 입장이다. 정년퇴직하면 집에서 손주나 보라는 식의 문화는 진작 사라졌다. 나이 들어도 일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령 구직은 여러모로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사람 가치를 저울에 달아 사고파는 것은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다. 하지만 인력 시장도 엄연히 수요-공급의 원리가 작동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그런데 고령 구직자는 보통 자신의 기대에 비해 '약소한' 급여를 제안받는다. 서운하다. 물론 자기 가치를 시장 가치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은 젊은 구직자나 늙은 구직자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똑같은 업무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이가 많으면 보통 임금이 적다. 기대보다 낮은 수준의 대우를 수용해야 하는 상황은 아주 고통스럽다.

고령 구직자는 왜 적은 보수를 제안받을까?

월급이 많은 직장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막상 대우가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은 그리 맘 편한 일은 아니다. 우수한 지원자가 늘 넘쳐난다.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임금은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되지만, 근로자의 생산 가치와 일치하진 않는다. 많은 회사가 시장 가치보다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한다. 왜 그럴까? 기존 직원의 높은 임금을 통해서 미래에 고용할 직원의 질을 높이려는 것이다. 대우가 좋으면 우수한 사람이 몰린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뽑을 수 있다. 기존 직원은 '능력보다' 더 높은 급여를 받으며 신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미끼에 불과하다.


경제학자 칼 샤피로와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주장한 이론이다. 시장 가격이 아니라, 효율 임금(efficient wage)으로 급여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월급이 많아야 기존 직원도 ‘긴장’해서 일한다. 최저 임금을 받는 직원은, 당장 월급이 없으면 굶어 죽는 대공황이 아니라면, 최저 수준으로 일할 것이다. 어딜 가도 그 정도 임금은 받을 수 있다. 최저 임금이니까.


기존 직원에게 월급을 많이 주면, 인사과 책상에 쌓이는 지원서도 점점 화려해진다. 최저 임금을 고집한다면, 새로 직원 공고를 내봐야 역시 최저 수준으로 일할 직원만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회사는 시장 임금보다 더 높은 급여를 지불한다.
그런데 회사 차원에서 고령자를 고용할 경우, 이런 효과가 반감한다. 젊은 신입 사원의 급여를 올리면, 두고두고 임원까지 시키면서 '오래도록 부려먹을' 인재를 구하기 쉽다.


그러나 고령자는 상황이 다르다. 아마도 시장 가치에 거의 수렴할 것이다. 나이가 많아서 대우가 인색한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이 너무 과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고령 구직자 입장에서는 '나이 많다고 박대받는' 설움을 느낄 것이다.


보수=자신의 가치?

나이가 있는 직장인이라면, 연공서열에 따른 급여제도가 그리울 것이다. 삼강오륜의 하나인, 장유유서는 도대체 어디 갔단 말인가? 역차별이라며 항변하고 싶다.


그러나 연공서열제는 원로를 대접하려는 유교의 철학을 실천하려고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젊은 직원을 오래도록 잡아두려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월급이 오르지 않는 직장이라면, 앞으로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져야 할 미래 창창한 젊은이에게 별 매력이 없다. 나이 든 직원에서 터무니없이 많은 보수를 지급하던 과거의 연공서열제는, 사실 젊고 유능한 직원을 붙잡아두려는 것이었다.


연공서열이 무너지고 있다. 나이 든 직원을 박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젊은 직원을 오래 고용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요즘은 젊은 직원도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중간에 낀 세대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젊을 때도 보수가 적었고, 나이가 들어도 보수가 적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하다. 당신이 이전 직장에서 받던 ‘높은 급여’는 사실 당신에게 주려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좀 억울한 마음이 들겠지만, 생각을 바꾸어 해보자. 당신의 임금은 당신의 가치 중 일부만을 반영한다. 나머지는 다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고령 구직자도 여전히 높은 생산적 가치를 가질 수 있지만, 임금은 단지 생산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보수가 적으면 누구라도 속상하겠지만, 당신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뜻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구직을 하는가

고령 구직자의 심리적 태도는 대략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구직에 관해 전전긍긍하면서 불안해하는 경우다. 끊임없이 과거의 급여 수준을 떠올리고, 주변과 비교한다. 좀처럼 원하는 만큼 대우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분주히 구직활동을 하므로, 많은 제안을 받는다. 그러나 늘 불만족스럽다. 우격다짐으로 어쩌다 많은 보수를 받게 되면, 이제 불안이 시작된다. 나는 언제 잘릴까?


둘째, 낮은 대우에 낙담하여 우울한 경우다. 사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알만한 나이다. 낮은 급여도 순순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마저 떨어진 것 같아 울적한 것이다. 왠지 싸구려 상품이 된 것 같다. 월급이 많은 젊은 직원에게 괜히 굽신거리며 자괴감을 느낀다.


셋째, 과도하게 부푼 희망에 찬 경우다. 경력과 연륜까지 갖추었으니, 그에 걸맞은 대우를 자신한다. 개인 집무실과 차량 제공, 심지어 개인 비서를 요구하는 식이다. 당연히 구직에 성공할 리 없다. 허울뿐인 높은 직급을 주는 직장에 혹하는 부류다. 대개 자기 돈으로 거대한 개인 사무실을 차리거나 동업을 하며 애써 모은 돈을 까먹는 식이다.


넷째, 노년기를 보낼, 여러 선택지의 하나로 직장을 선택하는 경우다. 모처럼 맞은 자유를 만끽한다. 새로운 직장도 슬슬 알아보지만, 작은 금전적 이득, 명함에나 찍힐 가벼운 명예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런 것은 젊은 시절에나 추구하는 가치다. 차근차근 삶의 의미를 완성할 최적의 직장을 찾는다. 마땅한 일터가 없으면, 텃밭이라도 가꾸면서 때를 기다려도 상관없다는 부류다.


은퇴 후에도 당장 밥벌이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원치 않는 직장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한다. 평생 열심히 살았지만, 오히려 살림살이가 점점 어려워진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는 어려운 사회 전체의 문제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구직하는 것이 현명하다. 급한 것이 없다. 


'치열한 경쟁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일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생산적일 텐데…' 젊은 시절, 복잡한 사내 정치에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기기 위해서 실적에 매달리고, 종종 무리한 일도 마다하지 않던 때다. 승리하면 영광이지만, 패배하면 다 헛일이다. 지금도 많은 직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마치 군대놀이를 하듯, 사무실 내 책상의 크기와 위치로 경쟁하며 젊음의 열기를 소진하던 때도 있었다. 연봉과 직책이 상징하는 사회적 가치로 자신의 무게를 달아 쟀었다. 그러나 기업은 당신의 '진짜 가치'에 따라 대우했던 것이 아니다. 당신도 다른 사람의 용역을 살 때, 그 사람의 ‘진짜 가치’를 고려하지 않듯 말이다. 


앞으로 이직할 기회가 손에 꼽을 것이다. 잦은 이직은 젊을 때도 마이너스 평판 요인이지만, 나이가 들면 더 그렇다. '기대'보다는 약간 적은 임금을 받되,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무리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직장을 찾아보자. 그런 직장이 통 없으면 '손주나 봐도 그만이다'라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탐색하자. 강태공은 일흔까지 낚시만 하고 지냈다고 하지 않는가. 탄창에 실탄이 많이 남지 않았다면, 신중하게 총을 쏴야 한다. 

뉴스레터 구독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주 2회 노후준비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 이메일
  •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보기
  • 광고성 정보 수신

    약관보기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정보변경이 가능합니다.

  • 신규 이메일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구독취소가 가능합니다.

  •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