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는 왜 위로 대신 쓴소리를 하는가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배우자는 왜 위로 대신 쓴소리를 하는가

글 : 김병수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前 서울아산병원 교수 2020-11-05

직장에서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짜증났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 놓았더니 아내 왈, "어쩌겠어, 그냥 참고 버텨야지. 남들 다 그렇게 직장 생활하는데 왜 당신만 이렇게 징징거려!" 그러더니 책 한 권을 펼쳐서 그 안에 든 글귀까지 꼼꼼히 읽어주는 아내. "못마땅한 직장 상사에게 대들고, 용기 있게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젊은 독신자들의 특권입니다. 결혼한 남자는 침을 뱉어 주고 싶은 상사 앞에 허리를 깊숙이 숙일 줄 알고, 이왕 허리를 숙인 김에 웃는 얼굴로 그의 구두에 묻은 먼지를 닦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입김을 하아하아 불어가며 깨끗하게 닦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걸 듣고 있는 남편의 표정은 영 언짢기만 하다. 아마, 이 남자는 아내에게 위로와 응원이 담긴 이런 말을 듣고 싶었을 테다. "그냥 그만둬. 난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회사 다니면서 불행하다면 그만둬. 같이 노력하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걱정하지 마!"




스트레스 받고 우울해지면 타인의 위로로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하는 본능이 작동한다. 이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욕구다. 스트레스에 직면하면 인간은 싸우거나 도망가기 Fight & Flight 반응을 보인다고 지금까지 여겨왔다. 하지만 보살핌과 친구 되기 Tending & Befriending가 더 우세한 행동 반응이라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 받으면 우리는 싸우거나 도망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과 하나가 되어 친밀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위로받고자 하는 행동이 자동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모 회사 중역 한 분이 스트레스 문제로 상담을 와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는 것은 다 참겠는데 마누라가 내 맘 몰라 주고, 스트레스 주는 것은 도저히 못 견디겠어요!"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해서 겉으로만 보면 웬만한 일로는 스트레스 받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정작 이 분의 진짜 스트레스는 '아내가 자기 마음을 몰라 주는 것'이라고 하니까 '역시 사람 마음은 다 똑같구나!'하고 느끼게 했다.


위로와 공감대신 쓴소리가 먼저 나오는 이유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진짜 문제는, 스트레스를 주는 일 그 자체가 아니라 '힘들고 지친 내 마음을 다른 사람이 몰라주는 것. 그것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몰라주는 것'이다. 위로는커녕 아픈 마음에 더 채찍질을 하는 말을 들을 때는 좌절감마저 느끼게 된다.


상대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면 우리는 그것을 고쳐 주려고 반사적으로 옳은 말을 내뱉게 된다. 이걸 두고 교정 반사 correction response라고 한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는 작동 원리 중에 하나다. 마치 무릎 가운데를 치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튕겨 올라가는 것처럼 상대를 가르치고 고치려는 자동 반사적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 때문에 힘들어" 라고 감정 섞인 하소연을 하면,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남편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사랑하는 남편이 괴로워하면 아내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자신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충고를 하게 된다.


교정 반사를 억누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배우자에게 고민을 털어놨다가 "괜히 기분만 더 상했다."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 보면 대부분 교정 반사의 희생자다.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어 말을 꺼냈는데 하나마나한 교과서 같은 충고만 들었을 때 기분이 더 나빠졌던 경험을 누구나 해 봤을 거다. 이건 배우자가 자기 마음을 몰라 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내 (혹은 남편)도 나약한 인간에 불과한지라 교정 반사 욕구를 억누르기가 어려워서 생긴 현상일 뿐이다.




눈 위에서 차바퀴가 미 끄러지기 시작하면 미끄러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야 차가 더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래야 차를 다시 도로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마찰력이 생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리도 '눈길을 운전하는 것'과 같다. 비록 상대가 잘못된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것 같더라도, 미끄러지는 그 방향으로 우선은 핸들을 돌려주어야 한다. 상대의 마음과 한 방향으로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상대를 옳은 말로 억지로 방향을 바꾸게 하려고 들면 오히려 사고가 난다.


이 간단한 원리를 우리는 쉽게 잊고 만다. 평소에는 '조심해야지'라고 마음먹고 있어도 배우자가 감정이 잔뜩 들어간, 그것도 괴롭고 불쾌한 기분에 휩싸여 스트레스를 늘어놓으면 자신도 모르게 교정 반사 욕구에 휘둘리고 만다. 정답을 빨리 알려주고 상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왜? 감정은 쉽게 전염되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감정적 스트레스가 자신에게 전염되어 더 듣고 있기가 힘들어져서 그렇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부부 사이의 이상적인 대화는, 현실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다. 남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직장 생활 힘들면, 그냥 사표 쓰고 나와. 난 당신을 믿어!" 라고 해줄 수 있는 아내가 얼마나 될까? 물론 있기는 할 거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 주면서도 속마음은 조마조마하지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을까? 


"내 주변에 그렇게 말해주는 부부를 봤는데... "라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 부부만의 독특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고 보면 된다. (아니면 쇼 윈도우 부부처럼 남들이 볼 때만 그럴 듯한 아내, 남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현실의 부부가 "자본주의에 종속되지 말고 자유를 찾아라. 직장 그만두고 당신의 꿈을 찾아가라!"는 위로의 말을 쉽게 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랑이 큰 배우자일수록, 현실에 충실한 부부일수록 이런 말을 하기는 더욱 힘들다.


위로가 필요한데 정답과 옳은 말만 쏟아내는 아내에게 야속한 마음, 더 이상 갖지 마시라. 아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당신에게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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