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증상 있지만, 검사 결과는 정상? 건강염려증을 의심해라
글 : 박한선 /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2020-09-29
가슴이 갑자기 죄어온다. 저릿하고 답답한 느낌. 혹시 심근경색증?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르랴.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힌 것이다. 급히 아내에게 전화하고, 응급실로 달려간다. 근데 아내의 목소리가 왠지 시큰둥하다. 남편은 생사를 오가는 상황인데,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몇 가지 검사를 해보더니, 그냥 가란다. 심장은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럴 리 없다.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뭘 알겠는가? 전문의를 불러달라고 하는데, 뒤늦게 응급실에 온 아내가 소매를 잡아끌며 나가자는 것이다. 아내는 병원 직원에게 굽신거리며 연신 죄송하단다. 아니, 내가 이번 달만 해도 일곱 번이나 여기 응급실을 찾았는데… 다음 주부터는 다른 응급실을 가야겠다. 다시 가슴이 죄어온다.
건강이 염려되는 병
건강염려증은 아주 오랜기원을 가지고 있다. 영어로는 하이포콘드리아시스(hypochondriasis)라고 하는데, 갈비뼈 아래 부위를 말한다. 쓸개를 덮고 있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쓸개즙이 조화를 잃으면 우울과 불안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도 과도하게 건강에 대한 걱정이 있는 상태를 갈비뼈 아래 증상(hypochondriasis)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말이 더 쉽다. 건강염려증.
살다 보면 이런저런 불편감도 있고, 통증도 있기 마련이다. 반나절만 책상에서 열심히 일하면, 허리와 목이 아프다. 몸을 풀겠다고 뒷산이라도 오르면 이제 장딴지가 당긴다. 중년이라면,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다. 그런데 건강염려가 심한 사람에게는 심각한 질병의 징후이자 증상이다. 즉시 허리디스크 혹은 대퇴근 파열을 걱정한다. 두통은 뇌졸중이요, 복통은 위암이다. 뭐 하나 깜박 잊으면 알츠하이머 씨 병이고, 팔다리 저릿하면 뇌졸중이다.
내 병을 인정해줘!
동네 한의원을 찾기도 하고, 건강식품에 집착하기도 한다. 사실 대안적 의료나 건강식품 시장의 상당 부분은 이런 건강염려증 환자를 기반으로 지탱된다. 건강식품을 좋아하는 정도라면, 뭐 그래도 양반이다. 문제는 위험한 검사와 치료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케이스다. 사실 병원에서 하는 검사나 치료는 크고 작은 위험성이 있다. 멀쩡한 사람에게는 약이 아니라 독이다. 하지만 건강염려증에 한 번 빠지면, 이런 조언은 들리지 않는다. 아마 제대로 된 의료시스템이 없던 과거에는 돌팔이의 손에 의해 '진짜 질병'을 얻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토록 소망하던 질병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몸이 아픈가? 마음이 아픈가?
건강염려증이 심해지면 망상에 이르는데, 결국 정신과 진료를 권유받는 지경에 이른다. 낙심천만이다. 건강염려증이라는 진단은 엄청난 모욕이다. 꾀병이 아니냐는 비난으로 들릴 뿐 아니라, 질병 호소에 숨겨진 내적 고통을 모조리 무시당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몹시 화를 내고, 다른 의사를 찾아간다.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따로 용어도 있다. 의사 쇼핑(doctor shopping).

왜 이럴까? 이들은 자존심의 상처를 받은 일이 흔하고,속으로 삭힌분노나 공격성이 강하다. 그러나 분노를 외부에는 잘 드러내지 못하는 편이다. 체면이 깎일까 두렵기도 하고, 외톨이가 될까 걱정도 되기 때문이다. 안으로 삭히다 보니, 아픔을 마음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서운하고 속상하다. '정상입니다'라는 의사의 말이 밉다. 큰 병에 걸린 것이 분명한데, 시큰둥한 아내나 남편도 너무 야속하다. 하지만 맨날 아프다아프다 소리를 달고 사는데, 어떤 배우자가 좋아할까?
마음이 아픈 것도 아픔이다.
신체적 질병에 대한 과도한 걱정으로 온갖 병원을 다 다녔지만, 정작 정신과를 제 발로 찾는 경우는 드물다. 아마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그리고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이 단지 '정신병'으로 취급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정말 드물게 정신과를 찾는다.
어쩌다 찾은 정신과. 하지만 기저에 있는 불안과 우울, 그리고 다양한 내적 갈등을 조금씩 다루다 보면, 어느새 신체 증상에 둔감해진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물론 불쑥불쑥 예전 증상이 다시 올라온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도 의사 아닌가? 매주 두 번씩 수십 분 동안 같은 증상을 호소해도 끈기 있게 들어주는 의사다. 분명 내 증상이 '정말로' 심각해지면, 금세 내과의사에게 의뢰할 것이다. 이런 믿음이 생기면 절반은 성공한 치료다.
건강염려증은 연령을 가리지 않지만, 중년 이후에 더 흔하게 나타난다. 특히 우리나라 중년 남성은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한편으로는 아주 약하기도 하다), 좀처럼 아프다는 이야기를 못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건강에 대한 염려가 심한 경우가 많다. 차마 누구에게 말을 못 할 뿐이다.
종종 마음의 아플 때, 마치 몸이 아픈 것처럼 느낀다. 검사상 이상이 없다는데, 안심이 되는것이 아니라 화가 난다면 곤란하다. 대체의학이나 건강식품을 찾을 것이 아니다.
이미 수십 년 동안이 거친 세상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분명 몸은 점점 편해지는 현대 사회다. 하지만 마음은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대한민국의 중년이라면 분명 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이 끄떡없이 멀쩡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중년을 사는 우리에게, 의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정신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 경희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호주국립대학교(ANU) 인문사회대(CASS)에서 석사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신경인류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강사, 의생명연구원 연구원,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강사 및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 왜 지금처럼 진화했는지, 특히 아픈 마음은 어떻게 나타났는지 관심이 많다. 정신과 의사로서 겪은 임상 경험과 신경인류학자로서 찾은 인간 마음의 진화적·문화적 설명을 통해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탐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재난과 정신건강(공저)’,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