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짱 끼는 노부부의 진짜 속사정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팔짱 끼는 노부부의 진짜 속사정

글 : 이근후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2020-02-18

사무실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참 좋아 보이십니다.” 이 말은 한동네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퇴근길에 들은 인사말이다. 좋다는 말은 싫다는 말보다는 확실히 듣기가 좋다. 그런데 이 지인은 우리 부부의 무엇을 보고 좋다고 했는지 궁금했다. 좋다고 했으니 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되돌려드렸다. 짐작해보니 우리 부부가 팔짱을 끼고 퇴근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는 좋게 보였나 보다. 늙은이가 팔짱을 다정하게 끼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나 보다.




나는 결혼하고 팔짱을 끼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내가 별나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당시엔 부부라도 팔짱을 끼고 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흔치 않았다. 부부라고 하더라도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부인이 뒤따라오는 관습이 있었던 때라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는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었던 때다. 그래서 나에겐 습관화되지 못했던 팔짱이다. 1980년 초에 유럽을 기차여행으로 한 달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우리 부부는 한 달 여행하는 동안에 많은 충격적인 문화 경험을 했었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내 곁에서 젊은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애정표현을 진하게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랐다. 시선을 둘 곳이 없어서 하늘을 몇 번 쳐다보다가 다시 힐끔 쳐다보니 여전히 포옹하고 입맞춤도 하고 있다. 그들 곁에는 나뿐 아니라 많은 여행객들이 서 있었는데,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별다른 표정도 없다. 우리 부부만 놀라서 쳐다보곤 했었다. 플랫폼에 있는 긴 의자에는 아예 둘이 안고 누워있는 청년들도 있다. 한 달 내내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전 유럽을 돌아보았는데 가는 곳마다 이런 현상이 있었다.


갈수록 더 놀란 것은 남자도 목걸이를 하고 귀걸이도 하고 문신도 하고 머리는 반만 깎고 남은 반은 무지개색으로 염색했다. 괴상한 모습이다. 그런 청년들이 한 둘이 아니다. 유럽 여행이 끝날 때쯤은 나도 그런 광경에 익숙해져서 암스테르담에서 느꼈던 충격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기억이 있는데 얼마 전 한강변에 있는 교회에서 모임이 있어 간 적이 있다. 시간이 좀 남아 교회 앞에 있는 아파트 단지 내의 산책길을 아내와 함께 잠시 걸었다. 잘 정돈된 산책길이고 앞에는 한강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팻말이 하나 보인다. “이곳에서는 진한 애정표현은 삼가주세요.” 이런 팻말이 붙어있다. 여기가 암스테르담인가? 얼른 그런 연상이 떠올랐다. 암스테르담에서 느꼈던 그런 충격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이제 그런 광경들이 벌어지나보다. “진한 애정표현....”이 표현하는 진한이란 말의 기준이 어느 정도일까. 손을 잡는 것이 진한 것인가, 팔짱을 끼는 것이 진한 것인가. 아니면 서로 입맞춤을 하는 것이 진한 것인가. 그 기준은 알 수 없지만 팻말은 그렇게 붙어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부부가 팔짱을 끼고 가는 것을 보고 지인이 혹시 진한 애정표현으로 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ㅋㅋ 요즘 전철을 타 보면 내가 암스테르담에서 경험했던 그런 청년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있다. 애정표현을 하는 청년 남녀들은 다른 승객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세가 드신 어른들이 그런 젊은이들을 보고 야단도 치고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요즘은 그런 청년이 많아서 그런지 누구 하나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적다. 이렇다면 내가 1980년대 초에 경험했던 그 경험이 이제 우리나라에도 일상화된 사회적 현상인 것 같다.




고백하자면 우리 부부는 애정표현으로 팔짱을 낀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필요에 의해서 팔짱을 낀 것이다. 아내는 어지럼증이 있어서 순간순간 주변이 빙빙 도는 아찔한 순간을 맞는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어지러울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길을 갈 때는 혼자 걷기가 위험하다.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팔짱을 끼는 것이다. 어지럼증이 와서 혹시 넘어지더라도 내가 의지가 되어서 다칠 염려가 적기 때문이다. 나도 필요에 의해서 아내가 팔짱 끼는 것을 허용했다. 나는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고 최근에는 오른쪽 시력마저 흐려져 간다. 그러니 내 고민은 혼자 걷는 것이다. 시력이 떨어지니 걸어가는 보도가 울퉁불퉁하다면 그 턱에 걸려 잘 넘어진다. 그러니 자연 내 시선은 땅바닥을 보고 걷는 수밖에 없다. 땅바닥을 보고 걷다가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과 잘 부딪힌다.


그러면 부딪힌 사람에게는 미안하다. 물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도 자주 부딪히면 이만저만한 실례가 아니다. 그래서 부딪히지 않으려고 앞을 보고 걷다 보면 보도블럭의 턱에 걸려 자주 넘어지려고 한다. 앞을 쳐다보면 블록이 겁이 나고 땅바닥만 보고 걸으면 걸어오는 사람들이 겁이 난다. 그러니 나도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안심하고 길을 걸을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니 아내도 자기 필요에 의해 내 팔짱을 끼고 나도 내 필요에 의해 팔짱을 낀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니 그냥 건성으로 팔짱을 끼고 가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의지를 하기 위해서 단단히 붙들고 간다. 이 단단한 팔짱끼기가 그 지인의 눈에는 진한 애정표현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르겠다. 따지자면 애정표현이란 표현도 맞다. 서로 필요한 만큼 의지하기도 하지만 배려하기도 하니까 그건 생각 나름이다. 우리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한 20분정도 걸으면 되는 거리다. 날씨가 아주 춥거나 아주 덥거나 비나 눈이 오지 않는 날은 이렇게 팔짱을 끼고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한다.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 눈에는 한결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참 다정한 부부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참 보기 좋습니다.”하는 말은 이제 듣기만 좋은 말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서로 필요해서 의지하긴 하지만 필요하다고 다 의지를 받아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지금부터는 나도 우리 부부 사이의 진한 애정표현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팔짱을 끼고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해야겠다. 팔짱 끼는 것은 젊은이들만의 독점물이 아닐 것 같다. 애정이 있으면 누구나 표현할 수 있는 팔짱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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