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년퇴직 후 동양화 대가 된 안창수 화백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라”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은행 정년퇴직 후 동양화 대가 된 안창수 화백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라”

글 : 이필재 / 인물 스토리텔러 2021-04-02

한국수출입은행에서 58세에 정년퇴직했다. 고향인 경남 양산으로 낙향해 대우조선해양 고문을 지냈다. 나이 예순에 중학교 친구와 취미로 서예를 배웠다. 반년 후 부산에서 열린 닭 그림 전시회에 다녀와 재미로 닭을 그렸다. 서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재능을 인정받자 그림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예순의 나이에 중국으로 그림 유학을 떠났다. 항저우미술대에 적을 두고 그림 공부를 했다. 최고령 유학생이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부터 밤 12시까지 닥치고 그렸다. 


그림에 매달리느라 붓을 쥔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뒤로 젖혀지지 않은 적도 있었다. 반년 만에 호모 배 전국서화 대전에서 닭 그림으로 입선을 했다. 열심히 그리면 잘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이듬해엔 임백년 배 전국서화 대전에서 호랑이 그림으로 1등 상을, 독수리를 그려 중화 배 전국서화예술대전에서 금상을 받았다. 당초 반년 잡았던 유학 기간이 2년으로 연장됐다. 그동안 한 번도 귀국하지 않았다. 대상포진에 걸려 한 달 반 고생했을 땐 고교 후배가 하는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들고 부인이 찾아왔다.


중국에서 귀국한 지 한 달 만에 이번엔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으로 두 번째 그림 유학길에 올랐다. 경비를 마련하느라 노후 대비책으로 장만한 서울의 오피스텔을 처분했다. 소화미술대전에서 입선한 후 일본 전국수묵회수작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대상 격인 외무대신 상을 받았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열여섯 번의 개인전을 연 안창수 화백의 이야기다. 지난해 12월엔 자선 전시회를 열어 수익금을 양산시청에 기부했다. 그와 만난 3월 24일 오전 백발의 장발 노인이 KTX 울산역으로 티볼리를 몰고 픽업하러 나왔다.




"나에게 그림은 뒤늦게 만난 죽마고우예요. 이보다 행복할 순 없습니다. 더 잘 그려야겠다는 자발적인 스트레스 말고는, 살면서 스트레스도 거의 없어요. 인생 2막에 재능을 발견한 덕이죠. 서예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꿈도 못 꿨을 삶입니다."


- 늦깎이 유학생활이 만만치 않았겠습니다.


"미술을 전공하고 석사과정에 유학 온 한국 유학생이 한번은 '한국에서 붓이라도 제대로 잡아보고 오시지.' 하더군요. 자존심이 상했지만, 한편으로 오기가 생겼습니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하는 심정이었죠."

결국, 그가 안 화백을 괄목상대하게 됐다. 스승이 그의 그림이 훨씬 낫다고 평가한 것이다.


- 두 나라에서 유학하는 동안 언어장벽은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3개월간 무료 중국어 강의를 들었지만 그림 공부와 중국어 공부를 병행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석박사 공부를 하러 간 것도 아니고, 둘 중 그림을 선택하고 어학을 포기했죠. 중국어를 제법 하는 젊은 한국 유학생들과 일본에서 교환교수를 한 교수 덕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 사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엔 말이 필요 없어요. 수출입은행 시절 도쿄사무소에 근무했고 그 후 국립 나고야대학에서 석사를 했기에 일본 유학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는 은행원 시절 베이징사무소장에 내정돼 국내에서 7개월여 중국어를 공부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IMF 체제가 덮치면서 베이징행은 무산됐다. 그는 그림을 남들보다 세 배 빨리 그린다. 스승에게서 너무 빠르다는 지적을 받고 천천히 그리려 노력한 적도 있지만 결국 ‘속필’로 돌아갔다. 자연히 다작한다. 교토조형예술대 교수가, 중국 중앙미술원장을 지낸 쉬베이훙 (徐悲鴻)은 말을 그리면 붓이 안 보일 만큼 빨랐다고 그를 격려했다.


"특히 매화는 빨리 힘 있게 붓을 놀려야 그림이 제대로 나와요. 처음엔 순수 수묵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다 채색화를 그리게 됐죠. 우리나라는 채색화를 그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서양화하는 사람들도 꽃은 많이 그리는데, 저는 새도 있는 화조화를 그립니다. 호랑이, 말 등 동물화도 다양하게 그려요."


그의 화풍에 대해 김상철 미술평론가는 "농담의 변화가 풍부하고 색채의 화려함이 강조된 그의 그림은 전통적인 운필과 색채 운용 방법에 더해 서구적인 조형 방법까지 차용하고 있다"고 평했다.




하고 싶은 일, 잘한다고 칭찬받은 일 하라


지난달 그는 KBS '아침 마당'에 출연해 '도전하는 인생 2막'을 주제로 강연했다.


- 인생 2막엔 무엇에 도전하는 게 좋나요?


"1막에 못한 하고 싶었던 일,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야죠. 하고 싶은 게 뚜렷하지 않으면 남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그런 일도 없다면 전문가의 강의를 찾아가 듣고, 롤 모델도 만나보고, 책도 읽으면서 내가 끌리는 게 뭔지 탐색하면 됩니다."


그는 그림도 두어 달 화실에 다녀 보면 재능이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조직생활 할 때 글씨를 좀 썼다면 서예에 도전해 볼 수 있죠. 과거 노래나 요리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내가 과연 그쪽에 재능이 있는지 한번 검증해 보는 겁니다."


안 화백은 시니어 배우이기도 하다. 2017년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에 일본 문부대신 역을 맡았고, 울산 KBS의 공익광고에 ‘폐지 줍는 할아버지’로 출연했다. 지금까지 대여섯 번 출연했다. 미사리 촬영장에서 3박4일 간 문부대신 출연 씬을 찍을 땐 일당 15만 원을 받았다."한번 해 보지 뭐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일본어를 하는 70대를 찾는다는 연락이 와 캐스팅 업체 사람과 만났는데 자기소개를 일어로 해 보라고 하더군요. 그제도 촬영 갔다 왔습니다."


인터뷰가 있던 날 그는 니트로 된 빨간 색 상의를 입고 있었다. 그 위에 노란색 목도리를 센스 있게 둘렀다."여자색, 남자색이 따로 있나요? 정년퇴직한 후엔 그림을 그리기 전에도 내 맘대로 입었습니다. 남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한 입고 싶은 대로 입어야죠."


- 좌우명이 뭡니까?


"자강불식(自强不息)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굳게 다지고 쉼 없는 노력을 하면 이룰 수 있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죠." 그는 육순에 그림 공부를 시작할 때 스승이 해 준 이야기를 들려줬다.


"중국의 금농은 쉰 넘어 붓을 잡았습니다. 예순을 훨씬 넘겨 대나무를 그리기 시작해 청나라 최고의 화가가 됐습니다."안 화백은 이 이야기를 듣고서 상당한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일본 유학 시절 스승인 리고 우 선생은 나더러 이대로 하면 5년 안에 한국에서 대가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열심히 그리기로 마음먹었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습니다. 실행에 옮기려면 우선 결심이 필요하지만 이런 외부의 자극이랄까 충격이 필요해요."


-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인가요? 


"아버지입니다. 활달한 성격으로, 면장을 지내셨는데 정직해야 한다는 거 말고는 통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법이 없었죠. 그래서 스스로 알아서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면장 아들이지만 보리밥 먹고 컸다.” 그가 아버지에 관한 일화를 들려줬다. 어려서 아버지 심부름으로 담배를 사러 갔을 때의 일이다. 버스정류소 앞 가게 주인은 앞을 못 보는 할아버지였다. 거스름돈으로 더 큰돈을 내밀었다. 그가 잔돈이 맞지 않는다고 하자 할아버지가 물었다. “누구 아들이니?”“안 면장 아들입니다."


그 후 그 이야기를 아버지를 통해 들었다. 은행에 다닐 땐 내부 고발자 노릇을 했다가 인사고과 1위였지만 4년 진급이 늦었다. 그가 장성해 상경한 후 어쩌다 집에 내려가면 아버지는 아들뻘인 그의 친구들과 어울렸다.

"아버지는 TV를 보다 노인이 나오면 꺼버렸어요. 저 역시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합니다. 노인들과는 인사만 나누지 잘 안 만나요."


- 처음 낙향했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각박한 서울에선 살아갈 전망도, 헤쳐나갈 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낙향했는데, '국회의원 하려고 내려왔느냐?', '서울 가더니 크게 되지도 못했네!' 소리를 들었어요. 낙향해 살려면 열심히 노력해 본인이 잘 되든지 아니면 속 생각 다 버리고 꾸벅 죽어지내야 합니다."지금 그는 양산의 유명 인사이다. 친구들에게 그림도 선물한다.


"그림값이 오른들 죽고 나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는 부모 덕에 대학 나와 은행원 생활했고, 여태 큰 고생이라고는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두 딸이 안겨준 세 손자에겐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다.


- 버킷 리스트가 뭔가요?


"스폰서가 있다면 세계 무대에 진출하고 싶습니다. 서양의 화단에서 인정받고 싶어요."


- 묘비명을 어떻게 새기고 싶나요?


"한평생 열심히 살았으면, 그럼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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