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전통 상부상조의 진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공덕(功德) 보험
글 : 치앙멍타오 2019-08-05

2026년 타이완은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인 이른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생의 만년에 접어들어 평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면 좋겠지만 누구나 준비가 돼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신체 기능이 약화되면서 의외의 사고에 노출되거나 각종 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물론 이같이 노후에 벌어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노인들은 청·장년 시기에 가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별다른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노년을 맞는 경우가 많다. 지금에 와서 보험 가입을 하려 해도 실질적인 수입이 많지 않은 그들에겐 보험료가 비싸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몇몇 보험사가 고령자만을 위해 설계한 ‘실버보험’ 상품을 출시했지만 대개 소액 사고·상해의료 또는 단기간의 실비보험뿐 이라 선뜻 계약서에 서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는 통계를 봐도 알 수 있다. 타이완 금융관리 위원회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타이완 국민이 장기요양보험, 연금보험, 종신생명보험 등 노후를 대비하는 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전체 인구의 10% 에 불과했다.
적지만 누군가에겐 절박한 돈
이처럼 기본 보장조차 없이 황혼에 접어드는 노인이 적지 않은 상황을 국가가 해결할 수 있을까? 노인들의 기초생활 보장도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그게 가능할까? 타이완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금융사들과 손을 잡았다. 저소득 고령층의 생활 안정을 위한 금융상품 설계를 요청한 것이다. 이에 금융 사들은 ‘소액종신노년보험’, ‘양로신탁’, ‘주택연금’, ‘마 이크로보험’ 등 4종의 상품을 출시했다.
그중에서도 ‘공덕(功德)보험’이라는 별칭이 붙은두 가지 보험상품이 있다. 이 별명은 국민들은 부담 없이 보험 보장 서비스를 받고, 금융사는 정부 정책에 맞춰 보험을 출시하지만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붙은 것이다.

'마이크로보험' 이미지
행정원 홈페이지
첫째 ‘마이크로보험’이다. 2009년 11월부터 타이완 내 15개 보험사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1년 보험 료가 300타이완달러(TWD, 한화 1만1000원)가량에 불과한 반면 보장액은 30만 타이완달러(1100 만 원)에서 최고 50만 타이완달러(1900만 원)에 이른다. 주목적은 노인과 취약계층이 최소한의 보험 보장을 받게 하는 것으로 하루 1타이완달러(40원) 도 안 되는 돈으로 노후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타이완 생명보험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쉬슈보는 “이 금액이 보기엔 적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절박한 돈”이라고 했다.
공익적 의미에서 ‘마이크로보험’을 판매하고 있지만 보험사의 실질적인 수익은 거의 없다. 그런 만큼 정부도 가입 자격에 제한을 두고 있다. 배우자 없이 연소득 35만 타이완달러(1300만 원) 이하이거나 부부 합산 연소득이 70만 타이완달러 (2600만 원) 이하의 가정, 원주민, 어민, 농민, 저소득자, 심신장애자 등 경제적 약자에 한해 가입 자격이 주어진다.
일반 상업보험과 비교해 마이크로보험은 세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낮은 보험료, 건강검진 면제, 보험금 청구의 신속한 처리를 들 수 있다. 1년 단기 계약으로 원할 경우 매년 갱신해야 하며 보장 내용은 생명보험을 포함해 사고·상해보험, 실비의료보험 등을 갖추고 있다. 보험 취지에 맞춰 만기 환급은 되지 않는다. 여기서 실비의료 보험금이 최고 3만 타이완달러(110만 원)로 높지 않은데 이는 보장 범위가 약 85%에 이르는 타이완의 국민건강보험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소액종신노년보험(小額終老保險)’이다. 노인의 신체 상해에 대비해 2017년에 탄생했다. ‘마이크로보험’과 비슷하지만 가입 자격에 제한이 없어 84세까지 가입이 가능하며, 가입 시 건강검진이 불필요하고 핵심 보장이 간단하다. 다만 보험사에 따라 만기 환급 기능도 있고, 일반 보험처럼 부가계약을 설정해 보장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점이 ‘마이크로보험’과 다르다.
보험 계약 실적에 따라 금융사에 인센티브

타이완 정부는 저소득 고령층의 생활 안정을 위해 금융사들과 손을 잡았다.
타이완 수도 타이베이 중심부에 위치한 금융센터와 금융기관 건물들.
원래 타이완 중남부의 전통사회, 향촌에서는 오래전부터 노인 생활자금에 보탬이 되거나 사후의 장례비용에 쓰기 위해 ‘○○호조회(互助會)’라는 이름의 민간 상조회를 만들어 활용했으나, 운용과 배분 등의 문제로 심심찮게 분규가 발생하곤 했다. 소액종신노년보험은 이 상조회 역할을 대신한다고도볼 수 있다. 다만 운용과 배분을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이 함께 맡는다는 점이 다르다.
이 보험의 보험금은 최고 50만 타이완달러 (2600만 원)로 1인 2계약까지 가능하다. 원래는 보험금 상한금액이 30만 타이완달러였으나 최근 상 향됐다. 연간 보험료는 1만2000타이완달러(45만 원)가량으로 비슷한 보장 내용의 일반 생명보험보다 약 30~40% 저렴하고 가입 시 납부기간을 6, 10, 15, 20년납으로 정할 수 있다.
이들 보험은 정부가 꾸준히 금융업계를 독려해 추진해나가는 사업이지만 그렇다고 금융업계에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보험의 계약 실적에 따라 신상품을 출시할 때 우선 심사하거나 심사 기준을 완화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사실 타이완에서 이러한 보험의 역사는 길다. 1935년 당시 장제스 총통은 ‘간이생명보험법’을 제정해 우정국(지금의 정보통신부)으로 하여금 ‘간이 보험’을 만들게 했는데 당시의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의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에 빛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간이보험의 정신이 지금의 ‘마이크로보험’ 과 ‘소액노년종신보험’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처럼 ‘공덕보험’은 상업보험이 사회보험의 역할을 담당하는 특이한 사례로서, 이재에 밝으면서도 상부상조하는 동양 정신을 갖추고 있는 타이완 사회를 잘 나타내고 있다.
글로벌 은퇴이야기
치앙멍타오
타이완 뉴타이베이 거주, 타이완 국립칭화대 졸업




